서울의 근대화 과정의 쟁점과 과제 
 
해체와 재구성
서울은 높은 데서 보면 마치 서서히 굳는 액체를 부은 것 같아 보인다. 처음에는 봉우리들 사이를 수평적으로 채우며 퍼지다 드디어 산의 경사면을 쫓아 서서히 기어오르는 형국이다. 해일이 도시 전체를 일시에 덮친 것처럼 거대도시 서울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이제 서울의 근대화 과정은 물리적인 한계점에 도달해 있는 듯하다. 지구상의 여러 거대도시와 반열을 같이하는 서울의 압축된 근대화 과정은 여타 도시들과 유사하면서도 또한 독특한 차이를 갖는다. 근대 도시의 성장은 그 자체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몰락과 농촌의 붕괴에 의존하며, 이를 촉진하는 것은 전통사회를 대신하는 산업사회의 등장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에 동원되는 노동자의 출현과 자본가의 출현이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 사회 안에서 제도로서 정착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제도는 늘 재생산되어야 한다. 서울의 근대화 과정 중에서 성취한 것이 단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세계 체제에 뒤늦게 편입하여 소위 ‘근대화’라는 온갖 징표들을 도시 안에 내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 흔적을 남기고 또한 삶의 방식과 견고하게 밀착된다.

신화와 권력
마치 질량불변의 법칙과 같이 한쪽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한쪽이 비워지게 마련이다. 액상의 서울 속에는 전통 사회와 농촌과 노동자의 땀과 자본이 뒤섞여 녹아 있고, 이것은 두 가지 힘에 의해 서서히 응고되는데, 그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끊임없는 재생산이라는 신화와 또 다른 하나는 근대 국가라고 하는 권력이다. 이 두 요소의 촉매제가 바로 정당화된 ‘폭력’이다.

식민지적인 공간의 재생산
서울의 근대화는 일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대륙의 전초기지로서, 식민정책의 항구적 거점으로서 서울은 개편되고 재조직되었다. 이는 옛 도읍 한성의 근본을 파괴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성벽철거위원회를 만들어 성벽을 철거하고, 일본군 주둔지 앞에 용산역을 개설해서 대륙과 열도를 잇는 교차점으로 활용하고, 도로를 신설·확장하고 전차를 개통시켰다. 시구개수예정계획(市區改修豫定計劃)으로 도심부의 공간을 개조하고, 조선시가지계획령(1934)에 의해 본격적으로 서울을 개편하였다. 경복궁 앞에 총독부를 세우고 시청 건물을 완성하며,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그리고 서울역까지를 잇는 권력의 중심 가로를 조성하여 식민 지배의 기능적이고 상징적인 중심축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중심으로 금융가를 만들어 식민 자본의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서울은 일제시대의 도시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일제’라고 하는 권력 구조가 대한민국이라는 정부로 개편되고, 황국식민이 대한민국 국민이 되며, 그 정점에 대통령이 통수권자로 상징되는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총독이 살던 자리에 대통령이 살았고, 경성부가 서울 시청이 되었으며, 총독부는 그대로 중앙청이 되었다. 동양척식회사 등 식민지 시대의 금융가와 언론사들은 제자리를 지켰다. 서울은 그 큰 틀에서 하나도 흔들림없이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인수하여 둑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일신할 공간의 투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전쟁
근대화 과정의 압권은 한국전쟁이다. 땅 위의 모든 건물은 사라졌다. 초토화된 땅은 역설적이게도 유토피아의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단비와 같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주목하고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생각할 사람들은 전무하였고, ‘전후복구’란 미미한 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할 뿐이었다. 천금 같은 재편의 기회는 상실된 채 서울은 ‘기존’의 일제 도시 조직을 열악한 조건으로 땜질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북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의 유입은 서울 전체를 판자촌으로 만들었다.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공간을 점유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방치되었다. 더 다른 해결책도 없었다. 국민이 스스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해내었다. 식민지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근대화의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기에는 이념도 없었고 힘도 없었다. 전후 서울의 난맥상은 지금까지 서울 안에 존재하게 된다.

식민주의의 일상성
한국전쟁이 서울에 남긴 것은 미군이다. 미군의 주둔은 두 가지 점에서 서울의 근대화에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공간의 점유이고, 또 하나는 현대적인 삶의 공인된 모델로 작동되는 ‘미국식’ 생활방식이다. 전자가 또 다른 점령군으로 상징되는 힘의 문제라면, 후자는 문화의 헤게모니의 문제다. 그래서 서울의 근대화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공간적인 그리드 위에 미국식 삶의 방식의 그리드가 중첩된 양상을 띠고 있다. 수동적으로 주어졌던 옛 식민지적인 틀 위에 세계사적인 힘의 조형을 위해 강제적으로 수용된 신식민지적인 공기가 흐르기 시작하였다.
근대화의 핵심이 현대적인 삶의 일상성을 이루어내는 것이라면, 서울, 아니 한국인들의 일상성 속에 두 개의 식민지적인 근성이 착근되어 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제3의 식민주의 : 자본주의체제
그리고 30년에 걸친 군부독재와 경제개발의 논리는 결국 서을을 불가능한 도시로 만들었다. 도시는 공공성에 기반하여 구축되기 보다는 자본 방임에 의존하고, 자본은 그 홀로 힘을 발휘하기보다 정치권과 결탁하여 그들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곧 다원적 민주주의에 적합한 공간의 생성이 아니라 독점적이고 획일적인 공간 생산에 대하여 반항할 수 없이 폭압적으로 수용되는 것을 정당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서울은 천민 자본주의적인 도시의 표본이 되었다. 막히면 뚫고 뚫리면 막는 땜질 방식은 물리적인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제도와 삶에 가해진 전방위적인 것이다. 법으로 위장된 국가 권력과  자유시장 원리를 먹고 사는 자본의 힘은 결국 이 땅위에 ‘폭력’을 정당화시켰다. 그래서 폭력은 이 도시에서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결국 서울은 폭력에 기반한 제3의 식민주의로 덧칠되었다. 시민은 없고 국민만 있는 나라에서 국민은 결과적으로 자본과 권력의 관리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자본은 이제 세계 경쟁에서 이겨내야 하는 ‘생존’의 최후 보루로서 작동되기 시작했고, 분단국가의 특성은 서울과 그 외곽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근대화의 완성
서울은 이제 식민지 유산을 청산할 때이다. 탈근대화의 문제와 탈민족주의의 문제도 동시에 생각해야만 한다. 근대성은 타율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이제 우리들의 기획이 있~<이하 생략>

<본문 79쪽~83쪽>


건네트-건축서적소개
[책제목] 서울 이야기
[지은이] 정기용
[펴낸곳] 현실문화

[책소개]
'흙 건축의 대가', '공간의 시인', '감응의 건축가', '생태 건축가'라 불리는 정기용이, 지난 20여 년 동안 서울에 관해 쓴 글들의 모음집. 서울의 원형이라 할 만한 자연환경과 역사, 그리고 도시와 상징들에 이르기까지, 그가 서울에서 발견해 낸 의미의 지층들은 두텁고 창조적이고 문제적이다.

[목차]
서문: 서울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나의 서울읽기
우리는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있다
나의 집은 백만 평
부엌 속의 미군기지 : 도시 원형의 생태적 회복을 위하여
도시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용산 가족공원과 박물관
압구정로, 삼성로 : W-P-F-R-A
테헤란로, 법원에서 운동장 사이 : 독점자본의 외딴섬
서울의 집단기억
서울의 근대화 과정의 쟁점과 과제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마당에서 광장까지
세종로, 왕조시대의 마당에서 민주사회의 광장으로
오래된 미래 : 북촌에 대하여
선유도 공원 : 잊혀진 땅의 귀환
겸재의 그림에서 영감을!
한강의 풍경과 시민
기억의 소멸이 미덕인 도시여 : 서울역
몬화도시 서울, 어떻게 만들 것인가
상징과 우상
서울의 상징 이미지 : 도시의 상징물은 보물찾기가 아니다
새로운 공간 문화를 위하여 : 서대문 형무소, 사형당한 역사적 유산
기표 : 천년의 문, 기의 : 천년의 후회
권력과 공공건축
도시, 건축의 정치학 : 그 폐허의 이미지
정권 이데올로기와 건축문화
전쟁을 기념하는 사회, 전쟁을 기념하는 건축
새로운 국회 : 수선보다 재생을
서울의 건축문화
미완의 건물, '예술의 전당'
누가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 : 국립중앙박물관 건립계획에 즈음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의 비극 : 미국인과 한국인에게 보내는 편지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시 서울의 관계에 대한 제언
서울시립장제장 : 관념적 사고의 건축적 해석
럭키금성 트윈타워
캘리포니아에서 밀레니엄까지 : 일산 '러브호텔'이 던지는 쟁점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읽기 : 변방의 미로
한국의 건축문화와 사회 : 서울 시청사의 축복받는 탄생을 위하여
건축에서 문화로 가는 길에 만난 7가지 장면들 : 견딤과 애정의 쌓임이 문화를 만든다
서울의 풍경들
사라진 풍경
사라지고 있는 풍경
생성되는 풍경
충돌하는 풍경
일상의 풍경
지속되는 풍경
후기 : 서울의 문화적 개혁을 위해




모스크바 건축물의 시대별 구분
테라스하우스의 개념과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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