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그리고 음악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란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 말은 괴테, 슐레겔, 쉘링 혹은 쇼펜하우어 등으로 그 출처가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누가 한 말인지 확실치 않은 채로 자주 거론되어지고 있다. 어쩌면 괴테의 말을 슐레겔이, 슐레겔의 말을 쉘링이, 쉘링의 말을 쇼펜하우어가 인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말했든 중요한건, 전대의 훌륭한 지성인들이 건축과 음악을 동일한 형식의 예술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건축을 무성의 음악, 공간의 음악이라고도 부른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종종 감동의 건반, 감각의 건반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종합감각체험 없이는 건축이라는 교향곡이 탄생될 수 없다고도 말한다. 대체 건축과 음악은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두 예술을 연결 짓는 것일까? 바로 이 의문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음악이 건축디자인이라는 창조적 작업에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며, 건축을 음악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중략>

독창적인 창조성을 필요로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다른 창조적 예술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그들의 창조성은 타 예술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욱 빛을 발한다. 다른 분야의 특수한 요소나 원리를 자신의 창작활동에 유입시키는 일은 더없이 유익한 일이며, 작품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특히 응용예술이라는 속성상, 건축의 경우가 그렇다. 물론 건축가에게는 다른 예술분야와의 접촉도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은 건축 디자인에 더욱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일 것이다.

고대로부터 건축과 음악은 접목의 가능성이 크게 열려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두 분야의 관련성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는 실정이다. 있다 해도 모호한 개념 정도만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나마 시도되고 있는 연구들은 신비주의적인 성향으로 치우쳐 있다. 더욱이 두 분야를 구체적으로 연결시키려는 건축가와 음악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예술 간의 공유가 비단 건축과 음악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모든 예술은 서로 꼬리를 물며 연관성을 가지고 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연계작업은 예술이 시작되었던 그 시기부터 있었을 것이며, 세월을 거듭하면서 더욱 강화되어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공간예술에 시간이, 시간예술에 공간이 자연스럽게 도입되었다.

문학이나 연극에 공간개념이 도입되었고, 건축과 회화에서도 음악의 전유물이던 시간과 리듬이 언급되고 있다. 또 시와 음악에서도 건축적 구성이 이야기된 지 오래다. 이제는 순수한 공간예술이나 순수한 시간예술과 같은 정의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미술 분야를 예를 들면, 화가들은 화폭에 움직임을 끌어들여 음악에서처럼 시간적 체험을 주려는 시도를 해 오고 있다. 발라의 ‘가죽 끈에 묶인 개’, ‘자동차의 속도’, ‘바이올리니스트의 손’ 등이 그런 작품이다. 남자 소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했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뒤샹의 ‘기차 안의 슬픈 젊은이’,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도 마찬가지의 작품이다.

의외지만 뒤샹은 ‘음악적 오류1913’라는 제목의 성악곡도 작곡했다고 한다. 이 곡은 음표가 그려진 종이를 모자 속에 넣은 후, 이를 섞어서 우연히 집혀진 것을 오선지에 붙여 만든 곡이다. 말하자면 우연성을 매체로 한 최초의 음악인 셈이다. 뒤샹의 이런 실험적인 장난이 50년쯤 뒤, 우연성의 음악가 존 케이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인지 케이지는 음악계의 뒤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건축에서는 음악을 어떤 식으로 끌어들여 연계시키고 있을까? 구체적으로는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지금까지 건축가들이 써온 방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건축공간에 음악의 시간성을 표현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건축과 음악의 공통재료인 수數를 매개로 하여 비례체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음악의 악보, 구성요소와 원리, 표현기법들을 건축에 직접 적용시키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한 건축과 음악의 연계작업은 역사 속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건축의 형태나 공간에 음악을 유입시키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있었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음악과 건축, 수학, 기하학 등을 서로 결합시킨 사람들이다.

그리스의 신전들이 음악의 비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 연구사례도 있다. 1930년대의 그리스 건축가 지오르지아데스는 신전기둥들의 크기, 기둥과 건물전체의 관계, 심지어는 기둥의 간격마저도 음악적인 비례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는 그리스 신전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음악의 비례와 훌륭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를 거쳐 르네상스시대에서도 두 예술의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건축의 경우, 고대 로마의 비트루비우스, 르네상스의 알베르티와 팔라디오 같은 건축가들이 그런 작업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알베르티를 비롯한 르네상스의 건축가들은 음악의 비례를 구체적으로 건축에 활용했다고 한다.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도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두 예술의 교류는 이어져오고 있는데, 비교적 최근의 건축가, 음악가들이 어떤 식으로 건축과 음악을 연계시키고 있는지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1악장 건축, 그리고 음악 중에서>


[책제목] : 건축의 노래
[지은이] : 허여지
[발행처] : 기문당(http://www.kimoondang.com)
[발행일] : 2010-10-05

[목   차]
1악장 건축, 그리고 음악
건축이라는 예술
예술장르 내에서의 건축과 음악
건축, 음악, 예술의 연계

2악장 건축과 음악을 넘나드는 사람들
음악을 사랑한 건축가
건축을 사랑한 음악가

3악장 아름다운 수
건축의 수
음악의 수

4악장 음악의 음계와 건축의 모듈
음계조직
모듈러

5악장 건축과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음과 점
동기와 건축적 아이디어
멜로디와 선
리듬
화성과 공간
음색과 색채ㆍ재질감ㆍ명암

6악장 건축과 음악의 원리
반복
대조
교체
점이
대칭
통일성과 다양성

7악장 건축과 음악의 감상에 대한 소견

8악장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
쟌느레에서 르 꼬르뷔지에로
음악적 건축언어
음악으로 풀어본 건축의 해석
르 꼬르뷔지에의 작품목록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건축과 음악의 장르간의 융합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 속에 두 가지의 소주제를 품고 있다. 소주제 중의 하나는 건축과 음악이 어떤 공통점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지 역사적, 이론적 고찰과 함께 구성요소와 원리 등의 구체적인 비교를 통해 두 예술의 상관성에 대해 짚어보는 것이다. 이는 건축과 음악의 접목에 대한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음악이 건축디자인이라는 창조적 예술작업에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예술의 크로스오버가 시대의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이 건축과 음악의 융합이라는 영역에 작은 시작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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