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이야기 
 

넓은 의미에서 무기질 풀(교착제 또는 결합재)을 뜻하는 시멘트가 인류사에 등장한 것은 약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이전부터 단단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하여 석재를 사용하였는데, 이들 석재들은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틈새를 막을 필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때 석회석이나 석고를 구워서 만든 풀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시멘트 원조 격인 생석회, 소석고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것을 이용한 건축물로는 이집트 피라미드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 후, 성능의 계량이 계속되어져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소석회에 모래를 혼합하여 사용하였으며 여기에 화산재를 섞으면 더욱 내구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샌토린 섬이나 포졸리 지방의 화산재가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현재의 혼합시멘트인 포졸란 시멘트와 맥을 같이 합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남에 따라 공업화가 급속하게 진전이 되었고, 시멘트도 급속한 발전을 하게 되어 1756년 영국인 스미턴은 물을 섞으면 굳는 성질을 갖는 시멘트를 점토분이 있는 석회석을 구워서 만들어 에데스톤 등대를 세울 때 사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부터 적당한 점토분이 함유된 석회석을 시멘트 암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시멘트 암을 이용하여 만든 로만 시멘트와 천연시멘트가 널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824년에 영국인 벽돌공인 에스프딘이 석회석에 점토를 혼합하여 구워서 시멘트를 만들었는데 이것의 굳은 모양이 영국의 포틀란드 섬에 특산품인 석재와 비슷하다고 해서 포틀란드 시멘트라 부르게 되었고, 에스프딘이 현대 시멘트의 창시자가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우수한 시멘트를 만들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1845년에 마침내 존슨에 의하여 혼합비율, 굽는 온도 등 시멘트 제조조건 등이 체계화되기에 이르렀으나, 이 시대의 시멘트는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51년 런던박람회에 시멘트가 출품이 되어 그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세계로 그 제조방법이 전파되어 오늘날 시멘트 산업으로 그 형태를 갖추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 시멘트 역사

우리나라 시멘트 공장이 최초로 세워진 것은 1919년 평양 승호리에 세운 공장이 최초입니다. 그후 1945년 해방까지 6개 공장이 건설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 대부분의 공장은 북한에 있었으며, 남한에는 오늘날 동양시멘트 전신인 삼척시멘트 공장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후 1957년 문경에 대한양회 문경공장이 준공되기에 이르렀으며,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시멘트 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게 되어, 1964년 쌍용, 한일, 현대시멘트가 건설되었고 1966년 아세아시멘트, 1969년 성신양회가 건설되어 1971년에는 우리나라 시멘트 생산능력이 700만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시멘트의 수요는 날로 증가하여 1973년 고려시멘트, 1985년 한라시멘트가 건설, 현재 우리나라에는 년간 약 6,200만톤의 생산량을 갖게 되었으며, 약 1,200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을 포함하면 약 7,400만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멘트 제조

광산에서 채굴된 석회석을 미리 분쇄, 혼합한 다음 혈암, 산화철 원료 등을 조합, 건조, 미분쇄하여 소성로(Kiln)에 공급할 수 있는 균일한 조성의 원료를 사일로(Silo)에 저장합니다.
이때 조합원료가 미분말이고 혼합이 잘 된 것 일수록 소성공정에서 크링커의 소결이 잘됩니다. 시멘트 크링커 제조용 소성로는 과거에는 선가마(Shaft Kiln)와 연속가마(Hofman Kiln, Dietschkiln) 등을 사용하였으나, 현재에는 주로 회전식 가마(Rotary Kiln)를 사용합니다.

조합원료가 소성로의 위 끝으로부터 공급이 되고, 아래 끝으로부터는 중유나 미분탄 등의 원료를 버너로 불어넣어 연소시킵니다.
조합된 원료는 소성로가 회전함에 따라 점차 이동하여 소성대에서 1450도의 온도에서 소결되어 크링커로 된 다음 냉각기로 이송되어 공기에 의해 급랭이 되고 저장됩니다. 이 크링커에 석고 3~5%와 함께 시멘트 분쇄기에서 미분쇄하여 포틀랜드 시멘트를 제조합니다. 이때 크링커 만을 분쇄하여 시멘트를 만들면 응결이 너무 빨라 작업이 곤란하므로 응결을 지연시키기 위해 석고를 함께 넣어 분쇄를 하여야 합니다.


시멘트 응결과 경화

시멘트에 물 시멘트비가 0.3~0.7의 물을 가하여 반죽하면 약간의 발열과 함께 페이스트가 되지만 실제로 곧 부드러움을 잃고 경화합니다. 이것은 시멘트 입자를 구성하고 있는 크링커 광물이 물과 반응하여 새로운 조직을 발달시키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단계를 응결(setting)이라 합니다.

보통시멘트의 응결은 물과 반응하자마자 두시간 전후에서 네시간 정도에서 끝나지만 가능한 한 시작이 늦고 종결이 빠른 쪽이 사용하기가 편리합니다. 응결은 굳어지더라도 그다지 강도를 갖지 않으나, 곧 경화하면서 강도를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은 단계를 경화(hardenning)라 합니다.

응결의 종결기가 되면 경화페이시트의 체적은 그후 거의 변하지 않으며 완전히 수화된 경화체에서 약 1/2은 시멘트의 입자를 채우는 공간이며, 나머지 반은 물로 채워진 공간입니다. 시멘트 겔은 시멘트 입자와 물의 소모와 동반하여 양자를 채운 공간에서 성장하고 시멘트 입자를 채운 공간의 두배까지 부풀어 올라 경화를 끝납니다. 시멘트 경화제는 크게 나누어 미수화 시멘트 입자, 시멘트 겔, 공극 세가지로 구분이 되며 그 양적인 비율이 강도의 대소를 좌우합니다.


경화체의 성질

시멘트 경화체 조직은 시멘트 페이스트, 모르타르, 콘크리트에 따라 다른데, 페이스트의 경우 주로 시멘트 겔, 수산화 칼슘, 에트린 가이트 등의 시멘트 수화물, 모세관 공극 및 이들에 의해 유지되는 수분 등으로 구분이 되어있습니다.
시멘트 겔의 공극률은 시멘트의 종류에 따라 일정하며 보통 포틀랜드 시멘트의 경우 28%이지만, 모세관 공극이
차지하는 비율은 물비에 따라 정해집니다.

모르타르, 콘크리트의 경우 시멘트의 1~6배 까지 골재가 혼합되어있고, 골재의 형상과 충전성이 강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본질적으로는 시멘트와 골재와의 부착력이 강도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시멘트 물과 반응하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제조 후 오랫동안 방치하면 실제활성은 떨어져 굳어지기 어려운 성질로 바뀌게 됩니다. 골재를 섞어 모르타르와 콘크리트로 하여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비, 바람, 한서, 토양, 지하수 등의 영향을 받게 되어 침식됩니다. 따라서 영구적으로 안정하다고 생각이 되는 콘크리트는 수명이 있는 것이 정설이고, 약 200~300년의 수명을 가진다고 추측도 하지만 그 결과는 분명치 않습니다.



자료출처(원문 및 이미지 보기) : 라파즈한라시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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